어둠론
안민 시인
회색 알갱이들이 흐르고 있다 불면의 눈동자 위로 천천히 떠가는 알갱이와 알갱이, 이것을 길의 입자라고 부르자
길 밖의 길은 몸 안쪽에 있다 고독한 자는 길을 잃었을 때 지도를 구하는 대신 어두운 거리에서 제 뼈의 냄새를 찾아 헤맨다 그렇게 서성이다 길이 되는 사람들, 이들을 낭인이라고 부르자
시한부 길을 눈치챈 이가 울고 있다 무거운 음률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한편에선 눈을 도둑맞은 여자가 해머로 피아노를 부순다 이러한 풍경을 아방가르드라 부르자
결빙된 동물의 잔해처럼 부스러진 시간이 혼미하다 아방가르드 혹은 난해한 미로를 몸이라고 부르자
길이 엉켜버리거나 무너진 이들은 미로의 심정으로 제 몸을 데리고 녹슨 십자가를 찾는다 이들을 병인이라고 부르자
계단 난간에서 말기 병인이 무너진 길을 흘리고 있다 눈에서 입에서 귀에서 길이 흘러나온다 흘러나와 흩어져 날린다 이 모든 미로와 피아노와 난간의 표정을 장막이라고 부르자
장막이 펄럭이는 지금, 당신도 흘리고 있다 회색 입자들을
눈; 무너진 길을 버리는 배출구 [비슷한 말: 입, 귀]
밤; 아방가르드 혹은 미로의 유전자 풀(pool)
어둠; 복수의 회색 알갱이 [같은 말: 길(뼈)의 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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