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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베르베르족

지성준 2012. 7. 24. 15:01

프랑스의 유명한 축구 선수 지네딘 지단, 그리고 ‘이방인’이란 소설로 유명한 세계적 작가 알베르 카뮈, 이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민족 혈통이 같다는 것입니다.

예, 바로 아프리카 알제리의 원주민인 베르베르라는 민족인데요, 알제리 인구의 20%에 불과한 소수민족이긴 하지만 이들은 아랍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천년 넘게 자신들의 고유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강인하게 살아왔습니다.

민족 정체성을 지켜온 베르베르인들의 눈물과 노력, 이영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동쪽으로 100킬로미터쯤 차를 타고 달리면 인구 15만의 도시 '티지 우주'에 이릅니다. 거주민이 모두 베르베르 사람인, 알제리 베르베르 족의 중심 도시입니다.

도시 어귀에 서 있는 속도를 줄이라는 교통 안내판, 문구는 아랍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낯선 문자로 번갈아 표기됩니다.

이 낯선 글자는 도심 곳곳에 있는 교통 표지판에서도 눈에 띕니다. 바로 베르베르인들이 쓰는 고유 문자입니다.

알제리의 국어인 아랍어와 상용어인 프랑스어 사이에 있는 이 문자가 바로 베르베르 문자입니다. 베르베르 인들은 알제리에서 소수에 속하지만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와 문자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베르베르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이들에게 베르베르어는 바로 자신들의 정체성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베르베르인의 한 가정집.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여성들의 손놀림이 분주합니다.

오늘 식사의 주 요리는 전통 음식인 '쿠스쿠스', 거칠게 간 밀을 찐 뒤 고기나 야채를 곁들여 먹는 베르베르인들의 오랜 주식입니다. 식사를 하며 이들이 쓰는 말이 바로 베르베르어입니다. 베르베르인들끼리는 늘 자신들의 언어만으로 대화합니다.

<인터뷰>바이야(베르베르 인):"평소에는 조상들이 사용해 온 베르베르 어만 씁니다. 우리 말을 모르는 사람하고 얘기할 때만 아랍어를 사용합니다."

자신들이 이 땅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천 년 넘게 지켜온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카림(베르베르 인):"알제리는 아랍인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원래 베르베르 인들의 나라였는데 무슬림들이 알제리를 정복하면서 아랍화한 것뿐입니다."

티지 우주에 있는 국영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매시간 전해지는 뉴스 방송이 생방송으로 진행 중입니다. 이 방송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바로 베르베르어 뿐입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베르베르어 전용 방송국입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3시간, 뉴스와 시사, 스포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베르베르어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인터뷰>하미드(베르베르 어 방송국장):"이 방송국의 기본적인 목표는 베르베르 언어와 문화를 장려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간직한 베르베르족은 알제리를 비롯해 모로코와 리비아,이집트 일부 등 북아프리카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11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이곳을 정복하기 전부터 이 땅에 살아온 원주민들입니다.

알제리에서는 전체 인구의 20%인 700만 명 정도가 베르베르인입니다. 대부분 이슬람을 믿지만 상대적으로 개방적입니다. 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어 아랍인보다 피부가 희다는게 특징입니다. 이들은 옛 그리스인들이 지은 '베르베르'란 이름 대신 스스로를 '아마지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유어로 '자유인'이란 뜻입니다.

티지 우주 도심에 있는 베르베르 문화관. 입구에는 베르베르어 보급에 앞장선 언어학자이자 작가인 '물루드 맘메리'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1970년대 세워진 문화관의 이름도 바로 이 학자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인터뷰>알 마하디(문화관장):"이 문화관은 1970년대, 정확히는 1975년 10월 설립됐습니다. 알제리 정부가 (베르베르) 예술과 문화 활동을 위해 세운 첫 번째 문화관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선 음악과 춤, 영화 등 베르베르 관련 각종 문화 공연과 언어 강좌가 수시로 열립니다. 지역민들에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매개체인 셈입니다.

<인터뷰>마리얌(대학생):"(베르베르)문화의 중심지이고 다양한 책들이 있는 도서관도 있습니다. 또 여러 전시회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베르베르인들의 전통 문화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독특한 의상은 한 눈에도
아랍인들의 그것과 큰 차이가 납니다.

결혼식 등 중요한 행사에서 전통 의복은 필수품, 화려한 이 전통 의상들은 모두 옛 방식 그대로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인터뷰>나디야(전통 의상 제작,판매):"이 옷은 전체 제작에 한 달 정도 걸립니다. 신부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문양마다 이틀 정도 걸립니다."

양털과 낙타털을 이용해 만든 이 양탄자도 전통 방식 그대롭니다. 크기에 따라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하지만 옛 제조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인터뷰>파루자(양탄자 제작,판매):"이것은 전통 문양이고요, 이것은 벽에 걸어 장식용이나 담요로 사용합니다."

베르베르인들이 지금껏 간직하고 있는 전통 문화와 언어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랍화를 추진해 온 중앙 정부에 끊임없이 맞서 싸운 결과입니다.

알제리 베르베르 인들의 역사는 저항과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랍인들의 침입과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맞서 오랫동안 싸워 왔고, 알제리 독립 이후 독재 정권 반대에 앞장선 사람들도 바로 베르베르였습니다.

티지 우주 외곽의 한 작은 기념 공원. 이 공원 한 켠에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비문이 서 있습니다. 50여 년 전 프랑스와 독립 전쟁을 치루다 숨진 이 마을 출신 전사들입니다. 동네마다 하나씩은 들어서 있는 이런 기념 공원은 외세에 저항해 온 베르베르 인들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바시르(주민):"점령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젋어서 숨졌고 나이가 많아야 45살입니다. 모두 이 마을 출신 순교자들입니다."

지난해 중동 전역을 휩쓴 반정부 민주화 열기. 당시 알제리에서 일어난 이 반정부 시위를 조직한 것은 바로 베르베르계 정당입니다. 이 정당의 뿌리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난 1980년, 이른바 '베르베르의 봄'이라 불리는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아랍화를 추진하던 중앙 정부가 언어 탄압에 나서자 베르베르인들이 들고 일어선 것입니다. 무자비한 진압으로 시위는 꺾였지만 베르베르인들의 저항은 이후로도 계속됐고 정당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지난 2002년, 베르베르어가 알제리의 국어로 공식 인정되면서 이들의 오랜 염원도 성사됐습니다. 티지 우주의 한 정당 사무소. 베르베르인들을 대변해 온 야당의 지역 사무소입니다.

허름한 사무실 한 켠에는 반정부 시위 때 사용하던 베르베르 깃발이 보관돼 있습니다. 베르베르인들을 위해 더 많은 자유와 자치를 얻어내는 게 이 정당의 목표입니다.

<인터뷰>부디아프 부사드(전 의회 의원):"우리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고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베르베르인들이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희생을 치러야 했고, 수많은 난관도 헤쳐야 했습니다. 아직도 미완성인 목표를 향해 베르베르 인들의 힘겨운 싸움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입력시간 2012.06.17 (08:33)   이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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