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화장실의 이원론 / 권혁웅

지성준 2018. 5. 26. 12:29

화장실의 이원론/ 권혁웅



나란히 꽂힌 칫솔이 나 대신 늙어갔으면 졸겠다

하나는 고운데 다른 하나는 백수 같아서

거울 속 봉두난발에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담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이 되지 않아서

장군이나 검사가 되어

쿠데타나 국정농단에 가담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클렌징을 할 때면 얼굴이나 멋었으면 좋겠다

문턱을 넘을 때 타인의 도움을 받아

변신담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좋겠다

비데에서 물이 나올 때를 기다려 고백을 하고

바람이 불 때 살아봐야겠다, 한 번 더 고백을 하고  

기미와 이미를 혼동했으면 좋겠다

우울과 우물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이 안에도 우물이 있네, 내가 버린 내가

나를 버린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네

칫솔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또 하는 동안

거울 속의 내가 먼저 외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밖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간절하게

나를 기다렸으면 좋겠다, 그동안

세탁기가 마지막으로 탈, 탈, 탈,

내 영혼을 턴다 물론 영혼 아닌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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