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일반부 운문(산문) |
박희진-김해시 장유면 부곡리 부영@1204-704 |
외할머니의 열쇠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부터 어머니께서는 주말이면 항상 외갓집에 심부름을 보내셨다. 정성스레 장만한 밑반찬이며 생활 용품 따위를 홀로 사시는 외할머니께 전해드리기 위함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성근 웃음을 보이시며 늘 반갑게 맞아주시던 외할머니! 깔끔하고 단정한 성격답게 외할머니의 오래된 안방은 항상 정리정돈이 되어 있어서 덜렁쟁이 나는 왠지 부담이 되곤 했다. 그 조금은 어색한 그 방에 늘 나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오동나무로 만든 화초장이었다. 어린아이가 어찌 화초장에 관심이 갔을까 궁금할 것이다. 내가 갈 때마다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닫혀 있고, 그 열쇠는 으레 외할머니 목에 걸려 있었으니 어찌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외할머니의 왕국을 들여다 볼 기회가 생겼다. 여느 때처럼 화초장을 닦으시곤 그만 잊으시고 자물쇠를 채우지 않으신 틈을 타 들여다 본 화초장 속엔 녹이 슬어 원래의 문양을 알아보기 힘든 몇 가지 종류의 열쇠와 자물쇠들이 다른 귀중품들과 함께 놓여 있었다. 몰래 외할머니의 영역을 감히 침범했다는 죄책감도 잠시, 오래된 저 물건들을 어찌 저리 소중하게 간수하시는지 궁금함이 앞서 외할머니께 연유를 여쭈었다. 손주의 맹랑함에도 찡그린 기색 없이 목에 걸린 열쇠를 만지작이시며 들려주신 사연은 뜻밖이었다. 그 옛날 외할머니께서 처음 시집오셨을 때 외갓집엔 여러 개의 방과, 곳간들이 있었다고 한다. 늘 손님들을 맞으랴, 한 달에도 몇 번 있었다는 집안 행사 준비하랴 바빴음에도 외할머니께서 그리 신이 나서 일하실 수 있었던 까닭은, 일찍이 시어머니께서 물려주신 방과 곳간들의 열쇠 때문이었다. 그 열쇠들만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허리가 휘어질 만큼 고된 시집살이도 가벼이 여길 수 있었단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나라에서 오래된 집을 허물고 양옥을 짓기 시작하면서 외할머니께서 그리 좋아하셨던 그 집도 현대식으로 변모되고 말았다. 그 아쉬움을 차마 떨쳐내지 못해서 자물쇠와 열쇠만이라도 간직하고 계신다며 소박한 웃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하신 외할머니의 얼굴엔 희미하게나마 그때의 행복이 남아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내 얘기를 들으신 어머니께서도 전혀 몰랐다며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그 열쇠들을 지금 당신이 보관하고 계신다. 행복했던 날들의 기억이 함께 하고, 아팠던 순간들을 함께 했던 손때 묻어 더 낡아 이는 그 열쇠들은 자물쇠들을 잃어버리고 지금은 어머니의 마음과 함께 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집도 버튼식 자물쇠로 바꾸자는 아이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열쇠를 넣어서 문을 열 때 왠지 청아한 소리와 함께 집이 우리를 반겨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니? 아귀가 맞아야만 열 수 있으니까 우리가 ‘주인이다’라는 느낌도 들고 말야.” 한국의 여인들은 시어머니에게서 집안 열쇠를 물려받았을 때 인정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부담감도 컸을텐데 그것에서나마 고된 시집살이의 노고를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나에겐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적은 육아 일기장의 열쇠가 6개 있다. 유독 열쇠를 아끼셨던 외할머니의 영향 탓이었을까. 고집스레 열쇠 달린 일기장을 써왔다. 아이들이 성년이 되는 해, 나는 우리 보물들에게 몇 개의 열쇠를 전해줄 수 있을까. 아이들이 내 열쇠로 인해 잠시나마 행복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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