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풍향계 / 최금진

지성준 2018. 5. 28. 15:07

풍향계 / 최금진


돌아보지 마라

여기에 목을 달아야 한다

쏟아져 내리는 나의 정년을 받아들여야 한다

집들은 낡아 얼굴이 떨어져 나가고

과거는 막차를 놓쳐 오늘에 당도하지 못한다

새들은 바람 속으로 머리채 잡혀 끌려간다

나아가는 듯하나 뒤로 밀려가는 것이다

붉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저쪽 끝

피 냄새를 가득 물고 헤엄쳐 오는 먹구름이 있다

귀신들이 곡하며 떼로 몰려온다

산다는 것이 폭풍우를 뒤집어 쓰고도

뚫고 지나가야 할 것이라면 누군가는

화살처럼 과녁에 가서 박히는 답변을 해야 한다

전언을 입에 물고

폭풍 속을 헤쳐 역류하는 풍향계

너의 목발 아래에서 부르르 길들이 울고 있다

날개 달린 곤충들이 날개 없는 몸으로 쌓여 있다

네가 쏘아 보낸 질문 하나가

신의 명치에 날아가 박힌 듯 잠시 바람이 자도

그러나 돌아보지 마라

너는 끝내 천 길 낭떠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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