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변화시켜왔던 근본적 조건들: 총(guns), 균(germs), 쇠(steel)
오늘 소개할 책은 올해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빌려본 책으로 알려진 "총, 균, 쇠"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이 책을 짚어들어 글을 남깁니다. 이 책은 "스페인은 어떻게 불과 수백 명으로 신세계 살고 있던 원주민 수천 명을 살해하고, 한 나라를 정복할 수 있었는가? 왜 어떤 민족들은 다른 민족들의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왜 지구 상에서 가장 척박한 환경에 맨몸으로 떨어뜨려놓아도 몇 시간 후면 집을 짓고 생활을 개척할 능력이 있는 원주민들은 유라시아인들에 의해 도태되고 말았는가? 왜 각 대륙들마다 문명의 발달 속도에 차이가 생겨났는가? 왜 어떤 사회는 다른 사회에 비해 더 빨리 진보할 수 있었는가? 왜 우리 사회는 부와 가난으로 나누어진 것일까?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이 인간 사회의 불평등하고도 다양한 문명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등의 문제에 답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1998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1937~)의 "총, 균, 쇠"는 이런 의문을 명쾌하게 분석한 명저입니다. 진화생물학자인 이 책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각 대륙의 문명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유가 인종적.민족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차원인 환경적 요소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이는 생태지리학, 생태학, 유전학, 병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등의 방대한 차원의 조사를 포함합니다. 그는 같은 위도상에 위치한 국가들이 비슷한 양식의 발전 형태를 보인다는 사실과, 또 극소수의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들이 존재하는냐 안 하느냐에 따라, 또 환경적·기후적 제반 조건 하에서 지배작물에 따라, 한 사회의 장기적 발전 비전의 명암이 갈린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아마 이 책에 대해 비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이 책이 모종의 결정론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에 따르면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한 사회의 지리적 환경적 운명은 정해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미 태초에 모든 인간적 조건들은 정해진 듯 보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필자는 이 책의 기본적 논조에 동감하는 편에서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문화와 교육 등 인간 실존의 모든 분야는 바로 그 시대를 지배하는 물질적 조건에 기본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칼빈은 하나 사회와 종교 공동체 내의 돌연변이에 해당하는 '영웅'에 대해 긍정적으로 논평한 바 있고, 이는 옳습니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세상을 바꾼 것은 대부분 한 사람의 인물이었습니다. 이는 현대라는 급변하는 시대에도 변치 않는 원리로 영국의 대처나 싱가폴의 라콴유와 같이 한 사람의 리더십이 국가과 국민을 바꾸는 일을 찾아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한 사람, 한 리더십의 영웅적 존재를 인정한 칼빈 역시 기독교의 기초적 신앙이 우리의 내부를 규정하는 육체와 더불어, 외부를 구성하는 물질 세계임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칼빈에 따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숙명론에 예속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 아래 작정된 존재임에 분명합니다. 불평등처럼 보이는 것이 부정할 수 없게끔 분명히 인간 사회 내에 존재합니다. 이 결정된 불평등은 특히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 수백 억의 자산을 물려받고 태어나고, 어떤 이는 백인으로, 어떤 이는 흑인으로 지음 받았으며, 어떤 이는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며, 어떤 이는 형편 없는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게 됨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보다 넓은 인간성의 지평에서 우리의 타고난 은사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고전 7:7)
다시 반복하면 분명히 하나님의 창조는 어떤 면에서 한 없이 공평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 한없이 불공평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 이 세상의 많은 환경적, 지리적 조건들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불평해야 할 그 무언가가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임을 인식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그 주어진 조건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며 존재할 뿐이고, 바로 여기에 우리가 충실할 때, 비로소 신앙의 영웅도 나올 것입니다. 세속적으로 이 책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결정론, 그리고 신학적으로는 수많은 기독교 사상가들이 천착하는 예정론과 섭리론. 글을 마치며 필자는 이 책에 이의를 제기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이 성과 속의 두 논리가 서로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임을 재확인하게 된다는 긍정적인 면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참고.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최근 TED 강연.
( .. 중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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