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롱프뢰유 [trompe l'oeil]
회화에서 관람자가 그림을 실제로 착각할 정도로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
고대 그리스 화가들은 초기의 양식화된 미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술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사용했다. 한 예로 제우크시스가 그린 포도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새들이 날아와 쪼아먹으려 했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 기법은 로마의 벽화가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트롱프뢰유 자체가 화가의 주된 목표는 아니었지만 초기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화가들은 정물화나 초상화에서 대상이 틀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그리거나 벽 또는 천장에 창문의 이미지를 그려 실제로 창을 통해 밖의 풍경을 보는 듯한 느낌을 조장하기도 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인타르시아'라는 상감기법으로 성가대석이나 성구보관실을 장식했는데, 보통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선반 위의 여러 가지 물건이 보이는 찬장을 트롱프뢰유로 묘사하고 있다. 19세기 미국에서는 정물화가인 윌리엄 하네트가 카드 선반 그림으로 유명해졌는데, 여러 가지 카드와 오려낸 신문·잡지 들이 진짜처럼 그려져 있어 관람자는 그것을 선반에서 집어 들 수 있을 듯 느끼게 된다. 20세기 후반 벽화가인 리처드 하스는 주로 시카고와 뉴욕 시에 있는 건물외벽 전체에 트롱프뢰유로 그림을 그렸다. 주로 소품을 제작한 에어런 보로드는 20세기 최고의 토롱프뢰유 화가라고 할 수 있다.
트롱 프뢰유 눈속임 그림
우리는 비교적 정확하게 사물을 바라보지만, 때때로 시각적 정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주변 정보의 영향으로 인해 원래의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각적 착각을 일으키는 현상을 착시라고 한다.
착시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건축이나 인테리어다. 실물보다 작게 혹은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착시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착시가 활용되지만 작품에서는 착시를 이용, 우리의 시선을 속여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보여준다. 서양 미술사에서는 실물을 착각할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트롱프뢰유라고 한다.
트롱프뢰유 기법은 기원전부터 사용돼 왔는데, 고대인들은 집이나 무덤에 그림을 그려 신화나 설화의 이야기를 일상 속으로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실내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는 장식적인 효과도 얻었다.
또한 최초의 정물화도 트롱프뢰유에서 유래됐는데, 손님 접대를 잘하는 부자로 보이기 위해 벽에 걸어두려 그렸던 음식그림이 최초의 정물화다.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우크시스가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그린 포도는 너무나 정교해 진짜 새들이 쪼아 먹기 위해 날아들었다고 전해지며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물 천장에 하늘을 그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천장이 열려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시대 화가 솔거가 그린 소나무가 진짜 소나무인 줄 착각한 새들이 날아와 벽에 부딪혀 죽었다는 일화가 있다.
집안이나 무덤을 장식하던 트롱프뢰유 기법은 점점 영역을 확대해 고대 그리스 연극 무대의 배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가장 발달했던 시기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다.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그려진 여러 가지 이미지가 뒤섞인 기이한 그림들에 사람들이 열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사진의 발명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그림들은 비평가들에게 조롱을 사기 시작한다. 그러한 비평가들의 조롱에 맞서기 위해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그려진 작품이 페레 보렐 델카소의 ‘비평으로부터의 탈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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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으로부터의 탈출>- 캔버스에 유채, 76*62, 스페인 국립은행 |
두 팔로 창틀을 잡은 소년이 오른쪽 발을 들어 창틀에 얹은 채 밖을 바라보고 있다. 창틀에 얹힌 소년의 오른쪽 발은 그가 밖으로 도망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흰자위가 반쯤 보일 정도로 크게 뜨고 있는 눈은 밖을 염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창틀은 액자다. 액자가 창틀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현상이다.
페레 보렐 델카소(1835~1910)는 당시 자신을 비롯해 착시효과를 극대한 트롱프뢰유 화가들이 비평가들의 비난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자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화가들도 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해 단순히 눈속임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사회를 비판했던 사실주의와 단순하게 대상을 똑같이 그리거나 눈속임만을 위한 트롱프뢰유 기법은 차이가 있다.
비평가와 화단의 노골적인 무시에 반감을 가진 델카소는 도망치는 소년을 통해 악평 때문에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나타냈다. 이 작품에서 액자틀은 작품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를 의미한다. 결과론적으로 델카소의 이 작품은 트롱프뢰유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