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마을은 맨천 구신이 되어 / 백석

지성준 2012. 11. 21. 14:30

마을은 맨천 구신이 되어

 

                    
                                             
백  석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 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통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 성주신 : 집을 지킨다는 귀신
     * 디운구신 : 지운(地運)귀신, 땅의 운수를 맡아본다는 귀신
     * 조앙님 : 조왕(竈王)님. 부엌을 맡은 귀신. 부뚜막신.
     * 데석님 : 제석신(帝釋神). 집안 사람의 수명, 곡물, 의류 및 무사태평을 맡아 보는 귀신 
     * 굴대장군 : 살빛이 검거나 옷이 시커멓게 된 사람
     * 털능구신 : 철륜(鐵輪)대감. 대추나무에 붙어있는 귀신. 
     * 연자당구신 : 연자간을 맡아 다스린다는 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