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쉬운 이야기

베르베르 겸손한 척 잘난 체

지성준 2010. 5. 12. 23:14

"한국은 해외 국가 중 내 작품을 이해한 첫 번째 나라다."

2010 서울국제도서전 참가차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49)는 12일 '저자와의 대화'에서 "방문할 때마다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깨닫는다"고 밝혔다. 1994년 이후 다섯 번째 방한이다. 작년 9월에도 다녀갔다.

베르베르는 서울국제도서전 주최 측의 사전 설문조사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외국작가' 1위로 뽑힐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다. 1991년 장편소설 '개미'로 데뷔해 장편소설 '뇌' '파피용' 등과 단편집 '나무' 등을 히트했다. 최근 단편집 '파라다이스'를 출간했다.

베르베르는 '파라다이스'가 "일어날 법한 일과 과거에 경험한 일을 적절하게 섞어서 집필한 작품"이라며 "놀라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실제 경험담이 녹아들어가 있다"고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에피소드를 써나갈 때마다 실제 사건에 창의력을 가미한다."

단편의 매력도 전했다. "일반 장편에서 시도할 수 없는 요소를 과감하게 녹여낼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일종의 마술탑 같아서 예상하지 못한 것들을 풀어나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단편은 완벽성을 추구하는 장르다."

"프랑스에서는 책이 발간되면 독자들과 인터넷으로 피드백을 자주 주고받는다"며 "한국에서도 이런 소통 창구를 마련해 팬들이 어떤 에피소드를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고 바랐다. "책을 통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보다 독자와의 소통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오늘과 같이 한국을 방문해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라며 웃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도 했다. "암기력이 좋지 않아 학교에서 흔히 말하는 모범생은 아니었다"면서도 "예술을 중요시하는 부모 덕분에 창의력을 발휘하는 과목의 성적은 좋았다"고 귀띔했다. "예술 분야에서 상상력을 펼치도록 도움을 준 부모 밑에서 자란 것을 행운이라 생각한다"며 "젊은 사람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려서부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좀 특이해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이라며 "그 탓에 고독한 순간이 많아 글을 읽고 쓰는 시간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베르베르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펴낸 '카산드라의 거울'의 주인공이 한국인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았었다. 이르면 올해 안에 국내에서도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한국 관련 지식은 "내 책을 처음 번역한 이세욱씨로부터 많이 얻는다"며 "한국이 아직까지 세계에 많이 알려진 나라는 아니라 내 작품을 통해 많이 알렸으면 좋겠다"는 자부심도 내비쳤다.

작가 지망생에게는 "글은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쓰는 규칙성을 가져라"며 "중간에 자신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끝까지 작품을 완성해라"고 주문했다. 또 "글 쓰는 자체를 즐겨야 한다"며 "단편을 많이 써 보고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절대 중도에 포기하지 마라"고 강조했다.

베르베르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경험이 녹아 있다는 이유로 동양철학을 높이 평가했다. 불교나 윤회사상, 사후세계 등에도 관심이 많다. "사후세계와 신 등에 의문을 제기하고 주변에 자문하는 것은 좋지만 겸손한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스스로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밭에 누워 하늘과 별을 쳐다보면서 답을 구하는 등 평범한 삶의 조건에서 벗어나 생각해보길 바란다."

베르베르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특기했다.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을 자주 해보는 것이 좋다"며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권했다.

베르베르는 13일 서울 이화여대 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자신이 연출한 영화 '우리 친구 지구인' 시사회를 연다. "내가 연출한 첫 영화인데 어쩌면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며 "외계인이 지구를 발견한다는 특이한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다큐멘터리 시각에 입각해 약 2년 동안 노력해 만들었다"며 "외계인이 지구에 떨어진다면 대중스타를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스타배우 없이 제작했다"고 알렸다.

베르베르의 동명 희곡이 원작인 연극 '인간'은 7월께 국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외계인들이 새장 안에 갇힌 남자와 여자를 관찰하는 내용"이라며 "두 사람은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라 그들이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면 인류가 종말에 처하게 된다"고 일렀다. "인간이란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작품이다."

베르베르는 16일까지 독자와의 만남, 사인회, 강연회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