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호수 /이하언 (2007 평사리문학상)

지성준 2010. 4. 20. 12:07

검은 호수



                                                       

      영미가 네스 호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주영 한국 대사관 직원이었다. 전화는 한 밤중에 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틀림없이 꿈일 거라고 아직 잠을 덜 깬 거라고 생각했다.

 

   서늘한 기운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 소리, 아빠. 덜컥 떨어지는 심장이 귀보다 먼저 반응을 보인다. 주위는 온통 안개로 자욱하다. 여기가 어디인가.  내 의식의 조각은 제 자리를 찾으려 더듬댄다. 밝은 군청색 하늘이 먼저 떠오른다. 이미 저녁 아홉시도 넘었던 시간, 그 생경한 밝음이 그저께 밤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였고 오늘 인버네스 행 기차를 탔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수 맞지 않은 안경이라도 쓴 듯 사방이 일렁댄다. 언덕 같은 것이 희미하게 보이고 낯선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림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텅 빈 눈동자, 밀랍 같은 얼굴, 오싹 한기가 느껴진다. 덜컹, 열차가 한 차례 흔들린다. 안 돼, 영미야. 새어나온 신음소리가 내 귀에도 낯설다. 놀란 듯 나를 쳐다보는 맞은편의 갈색머리 남자와 주위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여행 지도가 탁자 위에 펼쳐져 있다. 기차의 좌석 중 몇 개는 사이에 탁자를 두고 마주앉게 되어 있었고 그 중 한 좌석에 내가 앉아 있다. 내 옆 좌석의 젊은이도 혼곤히 잠 속에 빠져 있다. 차창 밖은 지호와 영미가 떠난 그 날처럼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가슴께에서 무언가 바스락댄다. 겉옷 주머니를 뒤져 종이 한 장을 꺼낸다. 공항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던 영미의 편지이다. 종이는 구겨지면서 만든 수많은 선으로 어지럽다.

‘네스 호로 가겠어.’

 감당 못할 여백의 한 중간에 적힌 한 줄의 문장, 컥 숨이 막혀온다. 나는 편지를 손아귀에  움켜잡는다. 손목에 힘줄이 불끈 솟는다.

   영국에 도착한 첫날 뜬눈으로 밤을 설친 나는 문이 열리기도 전에 주영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고 영사과 직원은 나를 병원으로 안내했다. 병원 냉동실에는 대사관의 도움으로 런던까지 운구 된 영미가 하얀 천 아래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흰 피부색을 증오했던 영미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더 하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영어 학원의 내 수업시간에 앉아있는 영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 흰 피부 때문에 외국인인가 갸우뚱했었다. 하지만 영미는 학원생 중 한 명이 외국인처럼 보인다는 말을 했을 때 발끈했다. 난 순수 토종이라니까요.

 내가 맡은 초급반은 모두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그 중에서도 영미의 영어발음은 워낙 형편없었다. 그래서 나는 영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오뚝한 콧날이 이국적이긴 했지만 새카만 눈동자 때문에 순수 토종이라는 그녀의 주장을 굳이 반박할 만큼은 아니기도 했다. 결혼식 날 단 한번 만난 그녀의 부모들도 틀림없는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영미에게 호적을 빌려준 외삼촌 내외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영미는 강의 첫날부터 가장 눈에 뜨이는 학생이었다. 쭉 뻗은 다리가 짧은 치마 아래 아슬아슬하게 가려져 있었고 교탁에서 내려다보면 앞이 많이 파진 웃옷 때문에 가슴이 훤히 보이기도 했다. 제일 앞에 앉아 내 눈만 집요하게 붙드는 영미 때문에 강의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영미는 수업보다 당황해하는 나의 모습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만남은 영미가 책을 흘려놓고 가고 내가 챙겨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영미는 그런 여자였다. 자주 넘어지고 부딪히고 물건을 잃어버리는.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상기된 얼굴로 나타나서 자신의 무르팍을 보라고 장난스레 내민 적도 있었다. 올라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다는 그녀의 무릎은 피가 배어나고 있었고 스타킹이 커다랗게 구멍 나 있었다. 정작 그녀는 피를 보고 놀라는 내가 재미있다는 듯 키득댔다. 영미는 약속시간은 물론 신호등도 잘 지키지 않았다. 빨간 신호등에도 거침없이 발을 내미는 통에 달려오는 자동차의 날카로운 클랙슨 소리를 종종 들어야 했다. 나는 그녀가 일어서면 뒷자리를 다시 한 번 살펴 종종 남겨져있던 가방이나 소지품들을 챙겼고 길을 건널 때는 손을 꼭 붙들어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럴 때 보여주던 무구한 미소, 언제나 꿈속에 있는 듯 한 몽롱한 말투, 조그만 일에도 쉽게 감동하고 때 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해서 당황하게 만들던 여린 심성을 가진 여자, 매일 그녀의 안녕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영미에게 옆에서 평생을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디까지 가시는 겁니까?”

 흘금거리던 맞은편의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기다린 듯 그가 말을 걸어온다. 아빠, 진짜로 네시는 있지, 그지? 막 지호의 목소리를 기억해내고 있던 참이었다.   

 지호는 거실바닥에 배를 깔고 뒤척대고 있었다. 티브이에서‘세계의 신비’라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었다. 타지마할에 얽힌 왕과 왕비의 애틋한 사랑이 첫 번째 이야기였다. 따분해하는 지호와 달리 영미는 눈물까지 뚝뚝 흘려대었다. 일찍 죽은 왕비만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외롭게 보냈다던 샤자한의 순정은 감동적이긴 했지만 이별의 아픔 같은 것은 여섯 살배기 아이가 이해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두 번째는 네스 호에서 목격되었다는 괴물 네시였다. 만화에서나 봄직한 괴물이 긴 목을 세우고 화면 가득히 나타나자 지호가 흥미를 보이기 시작 했다. 벌떡 일어나 앉아 열심히 들여다보던 지호가 제방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무언가 들고 나왔다. 두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공룡 프라 모형들이었다. 지호는 내게서 네시가 있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 했다. 글쎄다……. 기대에 찬 지호의 눈동자를 보며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열대지방에나 있을 법한 그런 거대한 파충류가 추운 스코틀랜드의, 그것도 차가운 호수 속에 살고 있다니, 생각은 속으로 삼켜버렸다.

 영미가 내 말끝을 가로채고 대신 나섰다. 스코틀랜드라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그녀는 지호보다 더 화면 속으로 빠져 들어있었다. 그렇고 말고, 이 지구상엔 우리가 모르는 신기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단다. 게다가 본 사람들도 있다지 않니. 그건 아마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공룡의 후예일거야. 지호는 영미의 대답에 더욱 신나 공룡 프라모델을 치켜들더니 말했다. 나, 이제부터 이걸 네시라고 이름 지을 거야.

 나는 영미를 가볍게 나무랐다. 아이에게 그런 허황된 이야기를 믿게 해주는 건 교육적으로 좋진 않다고. 심지어 도무지 보여 줄 거라곤 없는 그쪽 지방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사기극이 아닌가하는 말까지 도는 마당에. 영미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진짜 네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떻게 당신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지?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은 것은 믿지 않겠다면, 그건 너무 오만하잖아. 그리고 영미는 조금 웃었다. 좀 솔직해져. 아이교육 핑계 대지 말고. 당신이 싫은 건 그게 스코틀랜드에 있다는 거잖아. 도대체 언제쯤이면 남까지 힘들게 만드는 그런 피해의식에서 빠져 나올 거야. 소리치려던 나는 난데없는 다툼에 놀라 눈이 동그래진 지호를 보고 말을 삼켜버렸다.

 “네스 호로 갑니다.”

인버네스로 간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불쑥 네스 호가 앞질러 나와 버린다. 갈색머리는 처음엔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매우 신비로운 곳이죠. 저도 이번 여행 중에 그곳을 가보려 합니다. 네시란 놈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그는 자신의 유머가 마음에 든 듯 싱긋 웃는다. 캐나다인이며 휴가를 이용해 여행하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파란 눈이 선량해 보인다.

“그렇다면 당신도 그 호수에 네시가 산다고 믿고 있는 겁니까?”

갈색머리는 잠시 생각하는 얼굴을 짓는다.

 “글쎄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봤다는 사람이 3000명이 넘는다니 영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어렵지 않나요? 얼마 전에 BBC방송에서 최종적인 발표를 하긴 했죠. ‘600차례에 걸쳐 음파탐지 실험을 하고 위성추적장치를 이용해 네스 호의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네시의 존재는 어느 곳에서도 탐지되지 않았다’고. 꿈이 사라지는 순간이죠.”

그리고 어깨를 으쓱 추켜올린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을지 몰라요. 어떤 식으로 증명해 보인다 해도 말입니다. 자신이 그것과 마주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될 때까지는.”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어. 밝혀내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유전자 검사를 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상도는 극구 말리고 들었다. 증명되지 않은 사실은 아직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해오던 그 답지 않게,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거라고 설득하려 들었다. 그 날도 상도는 확인하고 입증된 방법만으로 자신의 환자에게 수술을 한 뒤였다. 피곤해, 수술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으니. 지친 얼굴로 나타난 그는 자기 연구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 앞 좌석에 털썩 앉으며 넋두리했다. 내가 찾아간 용건을 듣자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가 차츰 심각한 표정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미 결심이 선 내 마음을 돌려보려 했다. 한 가지만 묻자. 영미 씨를 사랑하고 있던 거 아니었니? 그리고 지호는?

 관광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갈색머리는 내게 왜 인버네스를 찾아가는지 물어온다. 얼굴이 어두워 보인다고 조심스레 덧붙인다. 나는 잠깐 머뭇댄다.

 “아들이 그곳에 있어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의 호기심이 부담스럽다. 나는 다시 고개 돌려 창밖을 내다본다. 그도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열차가 에든버러에 서자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그도 내린다.

  영미의 죽음을 알려준 영국 대사관에서는 지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이도 있었습니까? 무언가 착오가 생긴 게 틀림없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고  대사관으로 수없이 확인 전화를 했다.

 그렇게 확인하고 나니 속이 시원해? 자신이 혼혈아라는 것을 처음 실토한 날 영미는 도리어 감추고 있었던 적의를 드러냈다. 다들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내가 순수한 피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 자기네들에게 무슨 해를 끼치기라도 한 것처럼. 튀기라는 놀림으로 죄인 시 되었던 어린 시절까지도 내 탓인 양 몰아세웠다. 웃기는 건 내가 차라리 한국말을 전혀 모르고 영어만 썼더라면 훨씬 우호적이었을 거라는 거야. 자기네들의 말을 하고 자기네들의 피가 섞였다니까 더럽혀지기라도 한 것처럼 불쾌해하고 경멸의 눈빛이 되고 말더군.

 거짓말을 했다는 건 어쨌든 이해하기 힘들다고 나는 말했다. 영미는 진실이란 명분으로 가하는 폭력이 훨씬 더 가혹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우리는 부부고 적어도 나만은 믿어 주었어야했어. 영미가 시니컬하게 웃었다. 왜 그래야하지? 당신은 인격자니까? 하지만 그런 인격자연하는 위선이 얼마나 사람을 질식시키는지 알아? 게다가 난 사생아거든. 엄마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라. 스코틀랜드 사람이었다는 것밖엔. 영국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 마. 그 사람들은 지금도 자신들만의 화폐도 따로 가질 만큼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으니. 한심하게 들리겠지만 그 슬픈 자긍심이 내가 가진 유일한 힘이기도 해. 엄마는 만삭이 되어 외삼촌 집을 찾아왔고 나를 낳고는 스코틀랜드로 간다고 말하고 사라져버렸다고 했어.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냐고? 난 더 알고 싶지도 않아. 분명한 건 당신의 상식과는 한참 동떨어진 사람이었을 거야. 난 이래. 태어날 때부터 당신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규칙을 하나도 지켜보지 못했어. 당신은 절대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아니야. 상식선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사람이잖아. 하지만 규칙이란 게 뭐며, 상식이라는 건 도대체 뭐야. 다 힘을 가진 다수가 자기네 편한대로 만들어 갖다 붙인 거잖아.

 영미는 결국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지난 후 그녀는 거리의 여자처럼 흐트러진 모습으로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를 헤매다 온 건지, 얼마나 거칠게 자신을 학대한 건지 온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게 네가 원한 자유의 모습이니? 나는 피딱지 앉은 영미의 팔을 움켜잡고 흔들어 대었다. 머리에선 쉰 냄새가 났다. 집에 돌아온 영미는 잠만 잤다. 말을 잃어버렸고, 외출도 하지 않고 늘 집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똑 같은 날들이 지루하고 불안하게 계속되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텔레비전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영미를 발견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스멀스멀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질러야 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랑한 영미는 즉흥적이고 언제 일을 저지를까 늘 아슬아슬하게 만들던 영미였는지 모른다. 온 집을 촛불로 환하게 밝혀 퇴근하여 돌아온 나를 감동하게 만들던 때를 그리워했고 자다 말고 강이 보고 싶다고 깊이 잠든 사람을 깨워 한밤중에 핸들을 잡게 하던 영미의 충동성을 나는 그리워했다.

 심한 우울증은 가족의 이해와 포용이 절대적이라고 병원에서는 조언했다. 그래서 더 이상 진실의 가치에 대해 가르치려하지 않았다. 현재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없는 영미의 부모에 대해서도, 종적을 감추었던 시간에 대해서도 묻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인버네스에 도착한다. 시계를 보니 런던을 출발한 지 여덟 시간 반이 지났다. 인버네스는 아직도 환하다. 팔월이지만 오히려 쌀쌀한 느낌까지 드는 날씨이다. 비라도 뿌린 뒤인지 길바닥이 약간 젖어 있다. 소박한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거리가 적요하다. 인포메이션을 찾아 네스 호로 가는 버스 편을 알아본다. 버스 타는 곳은 인포메이션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출발 시간이 20분가량 남아 있다. 기차 안에서 내리 물만 마셨던 터라 속이 헛헛하다. 나는 근처 카페를 찾아 커피 한 잔과 피쉬 앤 칩스를 주문한다. 대금과 풍금소리를 합쳐놓은 듯 한 애조 띤 가락이 들려온다. 전통적인 복장인 타탄치마를 입은 남자가 카페 앞거리에서 백파이프를 불고 있다. 남자는 손풍금처럼 손가락으로 여러 개의 지관을 눌러 선율을 맞추고 입으로는 쉬지 않고 가죽주머니에 공기를 불어넣고 있다. 가락은 남자의 호흡에 따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애처로운 소리를 낸다. 한 아이가 남자 앞에 서서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는 신기한 양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엄마인 듯 한 여자가 다가와서 아이의 손을 잡는다. 아이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칭얼댄다. 여자는 다정하게 무엇인가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이가 방긋 웃는다. 나란히 걸어가는 모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때맞춰 나온 커피 한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만다.

  영미의 뱃속에서 힘차게 자라고 있던 생명의 존재를 처음 안 것은,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해 탈진상태가 된 영미를 거의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였다. 아기가 태어나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영미는 아기를 낯설게 바라볼 뿐 도무지 안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칭얼대는 지호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였고 잠을 재웠다. 방긋대던 아기의 냄새는 얼마나 달콤했던가. 지호의 맑은 웃음소리가 집안을 채우면서 영미도 조금씩 어둠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간혹 고개 치켜드는 어떤 의혹의 그림자도, 간신히 되찾은 행복 속에 끼워 넣지 않으려 애를 썼다.

 차창 밖으로 낮은 산들이 지나간다. 거친 평야와 잡목의 산들.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렸던 스코틀랜드의 자연은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이 숨 쉬고 있다. 상상한 것 같은 울창한 한대림은 볼 수 없다. 거의 민둥산에 가까운 낮은 구릉들이다. 아직도 자신들을 잉글랜드로 편입시키지 않는 나라. 영국이면서 영국인으로 불리길 거부하는 나라의 나무 없는 산은 비장함까지 엿보인다.

 네스 호가 가까워지자 입안이 말라간다. 몇 차례나 혀로 입술을 적신다. 확인한다는 것, 이제 그것이 두렵다. 그녀가 떠난 뒤 나는 가위로 조각조각 잘라 놓은 내 와이셔츠를 보았다. 펄펄 날아다니는 조각들 속에 그녀는 비명을 파묻어두고 갔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아. 당신의 차가운 시선을 견딜 수가 없어.

 언제나 예측이 불가능했던 영미였다. 그 끝은 스스로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마지막은 아니었다니. 사라진 지호에 대해 내가 느낄 가책이라도 기대했다면, 그녀는 성공한 셈이다. 눈만 감으면 영미가 울부짖었고 지호가 나를 불렀다. 지호는 마른풀이 버석대는 거친 들판에서 겁먹은 얼굴로 서 있기도 했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끝없는 사막에서 쓰러져가고 있기도 했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날에야 마침내 지호의 행방을 알아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영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 네스 호에 있는 토머스 B&B에서 그동안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다고 했다.

 마침내 버스가 선다. 한적한 곳이다. 북극점에 가까워서인지 빛이 완전히 스러지지 않은 검은 청보라 빛 하늘이 시간가늠을 어렵게 한다. 저만큼 호수가 보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린다. 토머스 B&B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낸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간판이 눈에 뜨인다. 간판에는 불이 들어와 있다. 나뭇결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투박한 문 양 옆으로는 조그만 정원이 있다. 주인의 부지런한 성품을 짐작케 하는 갖가지 꽃들이 수은등 불빛아래 신비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꽃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린 화분이 문 옆에 걸려 있다. 나는 선뜻 벨을 누르지 못하고 서서 드리워진 꽃가지 숫자만 세고 있다. 가슴이 자꾸 뻐근해져온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벨을 누른다. 한참 지나서 안에서 현관 불이 켜지고 사람이 나오는 기척이 난다. 문이 열리고 이마가 시원하게 벗겨진 중년의 사나이가 모습을 나타낸다.

 “저어......”

뭐라고 해야 할지 얼른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아 머뭇대는데 그가 먼저 아는척 해준다.

“오, 혹시 당신 지호 아버지입니까?”

 내가 부정하고 밀어내려했던 이름. 지호 아버지. 낯선 이방인은 간단하게 나의 가슴 속을 헤집어 낸다. 그는 주인 토머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토머스는 이미 내가 올 거라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간다. 집안은 좁다. 들어서자 바로 계단이 있었고 계단에 가려진 뒤로 작은 거실이 있다. 거실 옆의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난다. 방문이 두개 있다. 쉬, 왼쪽 편 방문을 열기 전에 그는 검지로 입술을 대어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한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작은 침대 두개가 놓여있다. 커튼이 드리워져 방은 어둡다. 그가 왼쪽 편을 손가락질 한다. 이불에 덮인 작은 몸피가 보인다. 지호는 몸을 웅크린 채 깊이 잠들어 있다. 못 본 새 좀 자란 것 같다. 복도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만으로 보는 옆얼굴이 수척해 보인다. 나는 손을 들어 가만히 뺨을 어루만진다. 따뜻하다. 그 보드라움에 코끝이 알싸해져온다. 지호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돌아눕는다. 내게 등을 보여주고서 다시 잠에 빠져 드는지 숨소리가 고르다. 오른쪽 침대에 잠들어 있는 아이가 뒤척대더니 이불을 차 던진다. 토머스가 이불깃을 추켜 주며 다정하게 다독거린다. 그는 나가자는 손짓을 한다.

거실로 나오자 내게 따뜻한 차라도 하겠냐고 묻는다. 토머스는 친절하지만 다소 수다스럽다. 홍차를 앞에 놓아준 뒤 은근히 나를 책망한다. 왜 이제야 왔느냐, 지호가 얼마나 침울했는지 모른다,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러나 알렉스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이들은 말보다 마음으로 통하는 것 같다…….

 강한 스코틀랜드 억양 때문에 그의 말은 알아듣기 쉽지 않다. 그는 영미에 대해서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 나는 감사의 말을 전해준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아까 그 아이가 알렉스인가 보죠.

 알렉스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데이지와 나는 그 애를 입양한 걸 너무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 애가 우리 집으로 오고부터 우리는 너무 행복해 졌어요.”

 그는 알렉스가 그들 부부에게 준 행복에 대해 말하고 싶어 안달이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참견을 한다.

“하여간 당신은 못 말릴 사람이군요. 지금 이 분 심정에 당신 이야기 따위가 머리에 들어올 것 같아요?”

빛바랜 분홍색 잠옷 가운을 입은 여자이다. 자다가 일어난 듯 눈이 부석부석하다. 아, 그렇군. 아엠 쏘리. 토머스는 무안한 듯 훤히 드러난 이마를 쓰다듬는다. 데이지라고 소개받은 그의 아내는 몸피가 두둑하다. 굵은 목 때문에 다소 둔해 보이긴 했지만 인정스럽고 순한 눈매를 가지고 있다. 데이지는 내가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주었지만 그녀 또한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영미는 그들이 운영하는 B&B에 투숙을 한 손님일 뿐이었다. 어느 날 새벽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 부부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들은 영미의 사망소식도 며칠 전 경찰과 한국대사관에서 사람이 나와서야 처음 알았다고 한다. 영미는 투숙이후 지호를 더러 맡기기도 했다. 친구가 없던 알렉스가 지호를 좋아해서 그들 부부도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생각은 했지만 차마 변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찾아볼 사람이 있다고 했어요.”

토마스도 옆에서 거든다.

“하지만 뜻대로 안되었는지 돌아올 때는 늘 지친 모습이었어요.”

하품을 연이어하던 토마스가 방을 안내해주겠다고 일어선다. 나선형 좁은 계단을 돌 때마다 닫힌 방문들이 두어 개씩 나타난다. 토머스는 삼층에서 발을 멈추고 계단 옆에 있는 방문을 열어준다. 작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다. 싱글 침대가 두개 있다. 지호와 영미가 투숙했던 방이라고 토마스가 말한다. 온다기에 일부러 비워 두었다고 한다.

 방문이 닫히자 주위가 무섭게 고요해진다. 마치 세상에서 나 혼자 고립된 듯하다. 내가 떠나온 곳과의 거리감이 피부로 와 닿는다. 나는 방을 둘러본다. 각을 맞춘 하얀 침대 깃. 새로 빤 듯 깨끗한 이불과 베게. 사이드 테이블의 텅 빈 서랍. 무엇인가 늘 흘려놓던 영미였건만 이곳에선 어디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침대 앞의 벽에 액자가 하나 걸려있다. 엽서 두 장 정도 크기의 사진이다. 인버네스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인의 배려, 네스 호이다. 전체적으로 흐릿하긴 했지만 호수 한 중간에는 기다란 목을 꼿꼿이 세운 파충류의 머리가 보인다. ‘플레시오사우루스’라는 공룡의 일종일지도 모른다는 학설을 내 놓은 학자도 있다. 빙하기에 북해를 따라 내려온 공룡이 갈 곳을 잃고 그곳에 머물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실체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BBC 방송에서 시도한 네시의 탐사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흔적이라도 찾아내고 싶었던 인간들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설왕설래 속을 네시는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임종 순간에 그것이 조작된 사진이었음을 실토했음에도 불구하고 윌슨이라는 내과의사가 찍었다는 사진은 이미 전설로 남겨져 있다.

 나는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내다본다. 여전히 하늘은 청보라 빛이다. 어둠이 없는 도시.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지호와 영미가 떠나 가버린 후 텅 빈 집에서 나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빼물었다. 영미의 물건들이 빠진 안방이 을씨년스러웠다. 지호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어수선하게 흐트러진 잡동사니 중에 눈에 뜨이는 것이 있었다. 네시라고 부르며 각별하게 아끼던 공룡 프라모델조각이었다. 나는 무너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치받아 올라왔다. 프라모델 조각을 주워들어 꿰맞춰보려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의 조각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져 없어지고 다시는 제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었다. 아빠 안 돼! 지호의 비명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상도와 만났던 날 나는 술에 만취되어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서 놀고 있던 지호가 반가운 얼굴로 일어섰다. 나는 지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나를 향해 오던 지호가 주춤 발을 멈추었다. 손에 공룡 프라모델이 들려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나는 풍선처럼 팽팽해진 분노를 어디엔가 터뜨려야 했다. 지호의 손에서 공룡 프라모델을 거칠게 빼앗았다. 바닥으로 힘껏 내동댕이쳤다. 파팍! 프라모델은 파열음을 내고 부서져 버렸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된 지호가 비명을 질었다. 무슨 짓이야! 막 방에서 나오던 영미도 소리쳤다.

 상도는 병원이 아니라 자주 가던 술집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그래서 나도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확인과 짐작이라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다르게 와 닿을 줄은 몰랐다.

  달라질 건 없어. 상도는 부러 더 무표정한 얼굴을 만들며 검사 결과를 말해주었다. 60%의 수분과 근육, 뼈, 그것들이 인간을 설명하는데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인간은 그런 수치에 숨어 있는 게 아니야. 의사인 상도는 가장 의사답지 않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같이 보낸 세월과 추억. 그런 것들을 생각해 봐. 넌 누구보다도 좋은 아빠였잖아. 주제넘게 상도는 나를 설득하려 들기도 했다. 용서, 이해. 자신의 문제가 아닐 때는 누구나 쉽게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가 느낀 절망감의 깊이나 배반감의 고통까지 헤아려 주지는 못했다. 여전히 영미 씨는 너를 사랑하고 너 또한 영미 씨를 사랑하고 있잖아. 그리고 지호, 그 애는 변함없이 너의 아들이야. 너만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개새끼,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씹어뱉듯 말했다.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나는 그에게서 지호의 모습을 엿보기도 했고 길 가던 모든 남자들의 얼굴에서도 지호의 모습을 찾아내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이 쓰고 있는 가면의 뒤를 뒤집어 그 숨겨진 실체를 보고 싶었다. 나는 허구로 만들어졌던 행복에 대해 보상을 받고 싶었다. 내 품을 파고들던 지호의 고사리 같은 손길과, 넘어져서 머리를 다쳐 황급히 응급실로 달려갈 때 등 뒤에서 편안히 잠들었던 체온을 몸이 먼저 기억해 낼 때, 나는 애써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내가 왜, 그 애가 뭔데. 그러나 그런 부정은 위안이 되지 못했다. 내가 찾아낸 진실, 그 덫에 갇혀버린 것은 바로 나였다.

   하얀 피부에 유난히 깊고 검은 눈을 가진 지호였다. 그 깊은 눈에서 가끔 불쑥 불쑥 나타나던 낯선 그림자. 그것을 밝혀내려 해서는 정말 안 되는 것이었을까.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내 가정을 지키고 싶었고 그 욕구가 남들보다 더 강했을 뿐이었다. 혈액형, DNA, 그리고 수많은 분자식, 나는 과학이란 이름을 빌어서라도 사랑을 증명하고 믿음을 찾아내고 싶었다. 

밤과 새벽의 경계도 모호한 지방. 창밖으로 네스 호가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이끌리듯 나는 겉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공기가 서늘하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려는데 거실 쪽에서 토머스가 나온다. 내가 또 그들의 잠을 깨웠나보다.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하려는데 토마스가 손을 내젓는다. 그 손에 대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들려있다. 원래 새벽 일찍 일어나 집 앞 청소부터 하는데 오늘은 좀 더 빨리 일어난 거라며, 마음 쓸 것 없다고 사람 좋은 웃음을 보여준다. 나는 네스 호를 산책하고 오겠다고 말한다. 그는 아침 식사 시간은 일곱 시며 늦으면 식사는 없다며 장난스레 말한다.

  다소 황량한 풍경이다. 가꾸지 않은 잡목들이 어수선해 보인다. 드문드문 벽돌집들이 나타난다.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한 창문들. 드리워진 커튼들 사이로 가끔 비치는 불빛들이 평화스럽다. 길을 벗어나 조금 걷자 네스 호이다. 안개 속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우크하르트 성이 멀리 보인다. 거의 폐허로 변한 성은 네스 호를 한층 더 음울한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물빛은 검다. 석탄의 입자가 많이 섞인 탓이다. 나는 한동안 망연히 서서 호수를 내려다본다. 검은 호수는 그 속을 보여주길 거부하고 있었다. 안개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잡풀 무성한 네스 호 둑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호수는 넓고 길게 뻗어져 있다. 뇌조 몇 마리가 먹이 사냥에 분주하다. 걸음이 자꾸 허우적댄다. 무언가가 발자국소리에 놀란 듯 황급히 몸을 숨긴다. 덩달아 나도 놀라 걸음을 멈춘다. 솔담비처럼 보인다.

 까닭 없이 가슴이 철렁해진다. 주위를 둘러본다. 낯익은 곳이다. 특별히 다른 곳과 구분지울 만큼 특색이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다르게 와 닿는다.  문득 머리를 쳐오는 깨달음이 있다. 바로 그 곳이었다. 영미가 서 있던 곳. 깨달음은 전율로 이어진다. 나는 그 자리에 묶인 듯 꼼짝하지 못하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를 바라본다.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자꾸 눈으로 스며든다. 깜빡대던 눈으로 호수 가운데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다. 안개 속에서 그것은 검회색 그림자처럼 보인다. 그림자는 제 자리에서 꿈틀대고 있다. 눈을 손등으로 문지르곤 다시 호수를 보니 그곳엔 아무 것도 없다.

   여보라고 부르라니까. 한번 말해봐, 여보오. 영미가 발로 호수 물을 차올리며 말했다. 튀어 오른 물방울이 반짝대며 부서져 갔다. 차차 그렇게 부르지. 멋쩍어서 자꾸 미루던 호칭. 영미는 말했다. 뭐냐 하면 말이지. 그렇게 불리면 내게도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땅이 생긴 것 같거든. 옆에서 지호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물에 빠질 듯 위태롭게 보여 나는 지호를 덥석 안아 올렸다. 방울 같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청명했다. 여름휴가 때 우리는 충주호에 갔다. 콘도를 얻어 사흘을 지내다 왔다. 영미는 호수를 좋아했다. 호수를 바라볼 때 영미는 여느 때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아침 안개가 호수를 신비롭게 감싸고 있었다. 영미는 혼자 호숫가에 나가있었다.

자신이 누군지, 어디에 속한건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아? 내가 다가가자 영미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남은 나를 볼 수 있는데 나만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는 거 같아.

나는 영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영미는 내게 몸을 기대왔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지호는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부탁하듯 내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해줄 수 있지?  영미의 눈빛이 물빛보다 더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영미가 너무 낯설게 보여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쩌면 그때 영미는 진실이 파놓은 함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빠.”

 환청처럼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고개를 돌린다. 희부윰한 빛 속에 지호가 서 있다. 데이지가 우산을 들고 그 뒤에 서 있었다. 나는 모호한 현실감에 눈만 껌뻑댄다. 데이지가 나를 현실로 되돌려 놓는다.

“잠결에 토머스와 당신이 이야기 나누는 소리를 들었던가 봐요. 자다 벌떡 일어나더니 아빠, 아빠, 소리쳐 우는 거예요. 가엾게도. 아빠에게 가자고 달래서 데리고 왔어요.”

 데이지는 안쓰럽다는 듯 지호를 내려다본다. 카메라가 줌인 하듯 지호가 조금씩 눈 속으로 당겨져 들어온다. 눈자위가 푸석하게 부어 있다. 나는 지호를 향해 발을 뗀다. 그런데 지호는 오히려 주춤 한 걸음 물러선다. 지호를 향해 한발 더 다가간다. 지호는 한발 더 물러선다. 나는 발을 멈춘다. 지호도 발을 멈춘다. 나는 지호를 향해 팔을 펼친다. 지호는 더 이상 물러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안겨오지도 않는다. 지호는 고집스레 입을 앙다물고 있다. 나는 지호의 눈 속에서 교차되고 있는 그리움과 원망을 읽어낸다.

나는 성큼 다가가 지호를 덥석 안아 올린다. 묵직한 무게감이 따뜻하다. 지호를 안아 보았던 것이 까마득한 옛날 같다. 지호는 내게 몸을 맡긴 채 가만히 있다. 하지만 품속으로 파고 들어오지는 않는다. 뻣뻣하게 굳어있는 것이 느껴진다.

 부자의 상봉을 지켜보는 데이지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먼저 들어가겠다고, 식사시간에 늦지 않도록 하라고 말하며 돌아선다. 데이지가 문득 발을 멈춘다. 그리고 아, 짧은 비명을 지른다. 여기라고 들었어요. 그녀가 발견된 곳. 데이지는 고개 돌려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알고 찾아 온 거예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흔든다. 데이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안개 속으로 아른대며 멀어져 간다.

품속에서 지호가 웅얼대고 있다. 뭐라고? 잘 들리지가 않아 나는 다시 묻는다.

“......근데......우리 아빠는...... 어디 있어?”

“무슨 소리냐? 그게.”

“엄마 아빠가 싸울 때 말했잖아. 나는 아빠의 아들이 아니라고.”

 철렁 가슴이 떨어진다.

 “엄마가 울기에 내가 달래주었어. 진짜 우리아빠 찾아가면 된다고. 엄마는 아주 멀리 있어서 갈 수 없다고 했어.”

무어라고 말을 해주긴 해야 하는데 귓전에서 윙윙 소리만 날뿐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나는 네시가 사는 데만큼 머냐고 했어. 엄마는 한참 생각하더니 그만큼일거라고 했어. 엄마의 아빠도 그곳에 있을 거라고 하면서.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어. 우리 아빠와 엄마 아빠를 찾아가자고. 근데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고 했어.”

 한번 말문이 터진 지호는 이야기를 쉬지 않는다. 입안에서 침이 바싹 말라간다.  “그럼 아빠 말대로 네시도 없는 거냐 했어. 엄마가 그건 아니라고 했어.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가르쳐줬어. 네시를 찾아가서  물어보면 다 알거라고.”

“......왜, 왜 그렇게 생각했니?”

“내가 아빠 아들이 아니라서 아빠는 내 네시도 미워했잖아. 부수고 던져 버렸잖아. 나도 아프게 하고는 말했잖아. 나도 네시도 다 거짓말로 꾸며낸 거라고.”

 기억이 난다. 나는 공룡 프라모델을 부수고 못하게 매달리는 지호도 뿌리쳐버렸다. 지호가 부딪쳐 벽이 울리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항의하는 영미에게 소리쳤다. 이건 장난감일 뿐이야. 엉터리라고. 진짜 네시가 존재하기나 한다고 생각해? 너나 지호도 똑같아. 모두 거짓이야.

“하지만 나는 아니야...... 거짓이 아니야. 나는 진짜로 있단 말이야.”

지호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나의 말이 새삼 서러운 듯 꺽꺽 가슴에 맺힌 흐느낌을 토해낸다.

“엄마는 아빠 말이 거짓이라고 했어. 그래서 진짜 네시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했어.”

다리가 휘청댄다. 지호는 흐느끼며 두 손으로 내 가슴을 떠밀며 몸을 뒤튼다. 나는 지호를 내려놓는다. 지호는 뒷걸음으로 내게서 몇 발자국 멀어져간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싸안는다. 괴로운 신음이 저절로 새어나온다.

 영미 또한 자신 존재의 근원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미는 아무 것도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발견한 것은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한 또 다른 이방인의 절망이었을 것이다. 상상의 불확실성이 확인이라는 닫힌 절차를 거치게 되면 얼마나 암담해지는지 나는 안다. 막연한 그리움조차 잃어버린 영미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지호에게 내놓을 답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영미는 지호의 확신 없는 삶을 지켜봐야한 다는 것이 더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지호에게 무슨 답을 주어야 할지 막막해진다.

나는 고개 돌려 지호를 찾는다. 지호는 그새 울음을 그쳤다. 호수를 향해 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켜놓고 있다. 지호 곁으로 걸음을 뗀다. 호수를 보고 있는 지호의 눈빛이 몽환적이다. 발그스름하게 상기된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피어나고 있다.

나는 지호의 시선을 좇는다. 호수는 물안개가 자욱하다. 그런데 물안개 낀 호수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나는 긴장한다. 미간을 좁혀 물체에 초점을 맞춘다. 어른대는 윤곽이 점점 커져 가고 있다. 안개와 희뿌연 어둠에 가려 희끗희끗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 B&B의 벽에 붙어져 있던 사진. 바로 네시, 틀림없이 그것이다. 네시는 긴 목을 곧추 세우고 유유히 호수를 헤엄쳐 내려가고 있다. 이따금 튀어 오르는 물방울도 볼 수 있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다. 이건 사실이 아니야. 허상일 뿐이야.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지. 또한 아닐 수도 있고. 존재한다는 건 믿음에서 시작하니까. 믿는 게 아니라 믿어준다는 거.

영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가슴이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거야. 믿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어. 나는, 지호는, 그리고 당신도…….  발이 묶인 듯 꼼짝할 수 없다. 안개는 아까보다 더 짙어져 있다. 빛과 어둠이 같이 공존하는 하늘에는 시간의 경계도 없다. 온몸이 촉촉이 젖어든다. 밤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는 호수는 안개가 되어 희뿌옇고 뭍은 새벽처럼 흐릿하다.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허공이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머릿속은 무중력상태처럼 텅 비어 간다.

무언가 따뜻하고 보드라운 촉감이 손을 감싼다. 슬그머니 내 손을 잡고 지호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지호는 거보라는 듯 자랑스러운 얼굴이다. 나는 지호의 작은 손을 꼭 쥔다. 고개를 끄덕여 준다. 네가 옳았어. 그리고 엄마도.

미소를 보여주려 했는데 울컥 목이 메어온다. 나는 자꾸 눈을 슴벅인다.

 수면 위와 아래의 경계조차 모호한 호수에서 네시가 이따금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져간다.

지호와 나는 같은 방향을 향해 서서 같은 것을 보고 있다. 마주잡은 손에 온기가 따뜻하다. 나는 손아귀에 좀 더 힘을 준다.




                                      (원고지 93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