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쉬운 이야기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 펌

지성준 2011. 10. 22. 18:16

앙리 까르티에-브레송. 사진을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치고 브레송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의 사진을 보면서 감탄했을거고, 평생 라이카에 50mm만 썼다는 그의 신화같은 얘기를 들으며 장비에 대한 욕망을 삭이기도 했을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브레송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의 사진 몇장과 전해져오는 전설로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그의 사진이 위대한건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이라는 사진촬영 방식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자신과 대상의 통합 즉 완전한 조화와 균형 속에서 실행하는 삶의 생생한 생명 포착. 이게 결정적 순간의 정의다. 도대체 이 머리아픈 말이 사진촬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걸까?


브레송의 사진은 보도사진의 형식을 가지면서, 대상의 인식주체가 집단의 공통된 의식에서 개체의 주관적 자아로 이동하는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즉,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기자의 글에 참고자료처럼 붙어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객관적 대상을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라, 그 취재 현장속에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가의 시선을 주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당시 실존주의와 존재론적인 사유인 유럽의 전통적 담론에 관계하면서 현대 영상사진의 이론적 배경이 된다.

결정적 순간은 일상의 단순한 시각적 포착이 아니라 사실상 어떤 '느낌'의 포착순간을 의미한다. 이것을 두가지 접근방식으로 이해해보려고 한다.


1. 평범미학

브레송의 '평범미학'을 이해하는 것이 첫번째이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대상을 자연스럽게 포착하는 사진을 찍었고, 이는 촬영자와 대상과의 관계에서 대상간의 통합, 그리고 시공간의 통합을 불러온다.


1-1. 대상과의 통합

그는 개인적 느낌을 배제한, 정확한 전달을 위한 보도사진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면적인 느낌, 즉 내재적 형상을 재현한다. 즉, 역사적 사건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자신의 느낌들을 전달한다.

영국 조지6세 대관식에서 관중석 밑바닥에 떨어져 자고있는 관객을 찍은 사진처럼, 외형적으로는 지리적 탐방이나 역사적 사건을 암시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현장에서 생생히 포착된 예견치 못한 상황들이 그의 주 촬영대상이다.

체험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하찮은 느낌들.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적인 엉뚱함과 이상함.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여운들이 만드는 결정적 순간. 바로 이러한 우연과 만남에서 그는 삶의 진실과 생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모르, 조지 로저를 중심으로 사진 협동조합인 매그넘을 창설하게 한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매그넘은 당시 잡지의 압력과 편집자들의 일방적인 힘에 맞서 사진가들의 권리를 방어했다.


1-2. 시공간의 통합

시간적인 관점에서 그의 사진은 '나 이때 있었다'라고 말하듯이 촬영자가 순간의 목격자임을 암시한다. 촬영자가 상황의 증인임을 말해, 직접 체험을 통해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의 평범하고 공통된 감각을 전달한다.

대부분의 경우 제스처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그의 사진들은 감상자가 이미지의 상황 전후를 상상하게 만들고 이는 곧 사진을 보는 관찰자와 사진가가 찍은 대상과의 관계를 연속적으로 만든다. 이처럼 자연스럽고 평범한 대상이나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 재빨리 찍는 사진을 그는 소베트사진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사실상 시간적인 관점에서 결정적인 순간 포착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순간포착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당시 사진기가 가진 문제, 즉 쉽게 움직일수 없다는 것을 해결해준 라이카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사용한 라이카는 고정된 50mm f3.5의 렌즈가 붙어있는, 레인지 파인더도 없고 노출계도 없는 단순한 장치였다. 그러나 긴 초점을 가진 렌즈들이 인간의 시각을 왜곡할 때, 그의 50mm 렌즈와 그가 사용한 눈높이 앵글, 평상거리는 가장 인간의 시각에 가까운 시각을 재현하였다.

이와 같은 소형 카메라의 순간 포착은 당시 사진촬영에서 혁명적인 방식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사진 촬영의 전통적 규범으로 간주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