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를 쬐어야 한다 / 백무산
지성준
2020. 12. 2. 15:30
너를 쬐어야 한다/ 백무산
타는 볕을 쬐어야 하고 언 바람에 피를 식혀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나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이다
내 피는 식었다 뜨거웠다 한다
세상 사정은 내 심장에 들어오고 나간다
기쁨을 쬐어야 하고 슬픔도 일용할 양식이다
먼 곳의 눈물과 환호도 내 간 속으로 들어오고 나간다
어두운 곳의 절규와 더러운 곳의 축제도
나의 폐부를 할퀴며 들어오고 나간다
내 몸에는 항온을 유지할 두꺼운 비곗덩이가 없다
내 살은 구리처럼 전도율이 높아 슬픔도 바람도
골수에 바로 전한다 나는 너무 뜨겁고 너무 차갑다
그래서 종종 내 주체가 피부에 있는지 심장에 있는지 뇌에 있는지
더 깊은 곳에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어쩌면 몸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인간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할 때만 내가 인간인 것 같다
항온을 유지할 만큼 나는 나를 책임지지 못한다
오랫동안 심장이 뛰지 않은 채 한곳에 머물렀던 적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정이 나를 해체하는 건 아니다
나의 심장에 햇볕도 기쁨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오직 너를 쬐어야만 할 때가 있다
먼 대륙의 바람이 심장을 자주 달구었지만 나는 떠날 수 없었다
너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너의 체온이 나의 체온이므로
낮고 어두운 곳에서 울고 있는 너 때문에
너의 차디찬 피가 멈추었던 내 심장을 뛰게 했으므로